레지오 단원의 선서
-입단한 지 만 3 개월이 되고 레지오에서 계속 봉사하기를 원하는 단원이라면 성령께 선서를 바쳐야 한다.
부단장은 1 주일 전에 이를 예고하여 선서자가 교본 제 15장의 선서문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선서를 받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 만일 어떤 사유로 예비단원이 입단 선서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수련 기간을 3 개월간 연장해 줄 수 있다. 한편, 쁘레시디움으로서는 예비단원의
적격성에 대한 확신이 설 때까지 입단 선서를 연기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라도, 3 개월 이상 6 개월 이내에 선서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에, 예비단원은 쁘레시디움을 떠나야 한다(교본 129 쪽).
예비단원의 선서가 끝나면 비로소 정단원의 자격을 얻게 되며, 부단장은 이 단원의
이름을 정식으로 단원 명부에 올린다(교본 127, 128 쪽).
-「3 + 3 = 6」제도란?
지난 4월 12일 ~ 13일 세나뚜스 평의원 피정중 실시한 그룹토의 결과의 하나로서,
새 단원의 수련기간이 최단 3개월 최장 6개월임을 재확인한 것이며,
이는 오늘날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문제가 새 단원의 수련기간 동안 쁘레시디움 단장을 비롯한 선배 단원들의
새 단원에 대한 교육의 결여로 새단원 자신도 아무 준비 없이 (또는 수련기간을 형식적으로 거친 후에) 3개월만 되면
무조건 선서해야 하는 것으로 아는 잘못된 풍토를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다.
서울 세나뚜스는 산하의 모든 쁘레시디움이 수련기가 끝난 새 단원을 선서하게 하는데 있어서,
철저한 훈련과 평가 끝에 새 단원이 수련기간을 3개월부터 6개월 이내로 조정하는 쁘레시디움 고유의 권한을 확실히 행사해 주기를 바랍니다.
- 퇴단하였다가 재입단할 때에는 3 개월의 수련 기간을 거치고 선서를 다시 해야 한다 (교본 130 쪽).
- 두 사람 이상의 예비단원이 한꺼번에 선서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여러 명이 한꺼번에 바치는 선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합동선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경사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선서자의 수가 많을수록
각자가 선서를 통해 느끼는 엄숙함이 줄어들기 때문이다(교본 129 쪽).
따라서, 합동선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며, 주회합을 통한 개별적인 선서만이 올바른 레지오의 선서 방식이다.
-신부님과 시간 약속을 할 때에 묵주기도 시간에는 피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일단 신부님이 들어오시면 영적 지도자의 자리에 않으시도록 안내하며, 만일 묵주기도 중에 들어 오셨다면
당연히 묵주기도를 포함한 시작기도가 끝난 다음에 선서를 진행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진행 사항, 예를 들어서 회의록 낭독 중에 들오 오시면 회의록 낭독이 종료된 후에 선서를 진행한다.
- 선서문은 다른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아치에스나 다른 행사 때의 봉헌 행위로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교본 130 쪽).
그러나 단원의 사사로운 신심 행위에 이 선서문을 사용하는 것은 무방하다.
- 선서를 하지 않은 단원도 간부가 될 수 있다(교본 138 쪽). 그는 평의회에서 정상적인 간부 임명 절차에 따라
임시 간부(또는 간부 서리)로 임명받으며, 선서와 동시에 자동으로 정식 간부가 된다.
선서의 방법 및 선서문 해설 (선서자 숙지사항)
(1) 선서자가 선서를 할 때에는 모든 단원은 다 같이 일어선다. 이 때, 벡실리움을 미리
선서자 앞에 옮겨 놓고, 선서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선서문을 낭독하는 중에 셋째 단락의 '레지오 단기를 손에 쥐고'
부분을 읽을 때 벡실리움 깃대를 오른손으로 잡고 선서가 끝날 때까지 손을 떼지 않는다.
부득이 둘 이상의 예비단원이 동시에 선서를 할 경우에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령이여"는 합동으로 하고,
자신의 성명(세례명)을 바치는 순서에서는 한 사람씩 바친 다음, "오늘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부터는 다시 선서문을 합동으로 낭독한다.
선서가 끝난 후 사제가 참석하였다면, 선서한 단원이 강복을 받도록 한다(교본 128 쪽).
(2) 사정에 따라 사제의 강복을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선서한 단원은 주회합에
함께 하고 계신 성령께서 이미 자신의 선서를 받으시고 강복하셨음을 믿고 의지한다.
이 선서는 "레지오 단원들을 한층 더 굳세게 만들어 주었다"
(교황 바오로 6세, 교본 128 쪽).
"레지오의 선서는 성령께 바쳐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볼 때 가톨릭 신자들이 성령께 드리는 신심은 너무나 미약하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들은 성령께 각별한 사랑을 드려야 한다. 레지오 단원이 펴는 활동,
즉 자신과 그리스도 신비체의 다른 모든 지체들을 성화시키는 일은 성령의 권능과 활동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성령과 일치해야 한다.
이 일치에는 두 가지 요소가 반드시 필요한데, 성령께 대한 깊은 공경과 성령과 불가분의 일치를 이루어 일하시는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다.
성령께 관한 많은 책과 강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께 대한 참된 신심이 일반적으로
부족한 까닭은 성령께 대한 신심 부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레지오 단원들은 이미 그들의 모후이신 성모님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 단원들이
성모님께 대한 사랑을 성령께 대한 확고한 신심과 결합시킨다면, 이 땅을 새롭게 하는
사업에 성령과 성모님이 일치하고 협동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계획에 가장
완전하게 참여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레지오 단원은 자신이 현재 기울이고 있는
노력보다도 더욱 큰 힘을 쏟지 않더라도 실패하지 않고 오히려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다.
레지오 단원들이 맨 처음 바친 기도는 성령께 대한 호도와 기도였고, 그 다음은 묵주기도였다.
그 후 오늘날까지 모든 레지오 회합을 시작할 때마다 같은 기도를 바치고 있으므로, 레지오 단원으로서 출발하는 입단식도
이처럼 성령의 주관하에 거행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이러한 입단식은 성령 강림을 연상시켜 준다.
그때 성령께서 베푸시는 은총이 성모님을 통하여 내려졌던 것처럼 성모님을 통하여
성령의 은총을 간구하는 레지오 단원들은 많은 은총을 입게 되며,
이 은총 중 한 가지는 성모님이 단원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스스로 밝혀 주시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레지오의 선서문은 레지오 단기에 나타나 있는 레지오 신심과 잘 어울리고 있다.
단기에는 비둘기 모상의 성령께서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레지오와 그 사업을 성모님을 통하여 주관하시는 모습으로 잘 나타나 있다."
(레지오 마리애 꼰칠리움 제88차 월례회의 회의록에서)
레지오의 선서문 해설- 허윤석 신부님
선서(宣誓)란 서약의 선언, 즉 계약(契約)을 선포한다는 의미이다.
서약(誓約)은 로마시대를 포함하여 모든 고대사회에서 자유인만이 할 수 있는 권리였으며,
서약을 하기 위해서는 노예가 아닌 자유인이라는 최소한의 조건이 있어야 했다.
그 다음 조건이 목적과 규율에 대한 존경이다. 이러한 선서는 공적인 선언으로서
조직과 사회의 새로운 신분과 위치가 되었음을 나타내기에 대부분 구성원이 모인 장소에서 실시된다.
선서란 공동체와 새로이 이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는 개인간의 계약을 선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조직 운영의 입장에서 볼 때는 확장과 발전을 의미한다.
그리고 선서예식은 선서를 하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구성원이 되는 입문 예식이 된다. 또한
선서는 계약의 선포인 만큼 계약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목적이 분명히 드러나 있으며,
선서하는 사람은 그 내용을 늘 숙지하고 실천해야할 의무와 책임을 지게 된다.
지금은 누구나 하는 서약이 있다. 혼인서약이다. 결혼식 때 많은 하객들을 향해 부부는 혼인서약을 선서한다.
지금처럼 민주주의 사회이전에 계급사회이었을 때는 결혼식이란 귀족계급과 자유민 계급이상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었다.
꽤 까다로운 법적인 조사와 절차의 수행 그리고 여러 가지 준비를 걸쳐 혼인식이 이루어지고
혼인의 자유의지 여부를 묻는 혼인선서는 천주교 문화권의 대표적 서약식이다.
예로부터 이렇듯 선서는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치고 자유권리를 갖은 상태에서 같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동반자들의 굳은 의지의 서약이었다.
그러나 요즈음의 세태는 이혼율이 50%를 상위하는 신용과 믿음 부재의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그 만큼 서로를 신뢰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고 자신의 취향이나 이익에 위배되는 상황이라면
그 누구 앞에서 맺은 약속과 계약도 휴지처럼 파기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어느 부부가 신부님을 찾아 와서 이혼 하고 싶다고 했다.
신부님은 혼배성사 때의 혼인 서약문과 혼인미사 때의 미사강론을 다시 보여주며 이 내용을 기억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혼하려는 두 부부는 멋 적어 했다. 신부님은 그 부부에게 부부의 계약을 파기하고 싶으면 성당 제단으로 오라고 말했다.
그들이 정말 혼인의 계약을 파기하러 제단 앞에 나오자 신부님은 갑자기 남편의 머리를 성수봉으로 내리쳤다.
성수봉으로 얻어맞은 남편은 “신부님 도대체 갑자기 왜 그러세요!
우리는 이혼하러 온 것뿐인데 ......... 부부의 계약을 파기해 주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신부님이 말했다. “‘나는 누구누구를 아내로 맞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죽기까지 사랑하고 부부의 신의를 다하겠습니다.’라고 하느님께 맹세했지?
그러면 한사람이 죽어야 서약이 파기 되지. 그러니 당신이 얻어맞고 먼저 저승에 가면 자연히 혼인 계약이 깨지는 거지?
누가 먼저 가실래? 자, 이것이 당신네가 하느님께 서약한 혼인 선서문 일세. 죽기 싫으면 어서 가서,
서로 힘들고 괴로울 때 이 선서문을 힘차게 읽고 묵상해 봐!” 우리 레지오 마리애의 선서문의 내용을 살펴본다면,
그것이 단지 입단 전에 장엄하게 치루는 하나의 겉치레나 통과의식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첫째, 선서가 계약인 만큼 우리와 계약을 맺는 당사자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의 군단이므로 성모님께 선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레지오 마리애의 선서문은 바로 하느님이신
성령께 하는 것이며 계약자의 당사자 역시 성령님이시다. 레지오 마리애의 단기인
벡실리움Vexillum의 가장 최고에 위치하신 분은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나 계신 성령님이시다.
성부의 능력이시며 동시에 3위이신 성령님을 통해 마리아가 구세주의 모친이 되신 것처럼
‘인간 스스로는 하느님께 합당한 봉사를 드릴만한 능력이 없다’는 우리의 고백으로 레지오 마리애의 선서는 시작된다.
이와 같이 우리가 성령님께 의탁하는 모습은 마리아가 천사의 아룀을 받았을 때의 심정과 상태를 나타낸다.
둘째로, 선서문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성모님께서 성자를 이 땅에 낳아주시고
성모님께서 성령님의 궁전이시며 짝(배필)이 되심을 강조한다.
레지오 마리애의 선서는 철저하게 선서자를 작은 성모님으로 인식하고 있다.
즉, 성령님과 성모님이 하나가 되시어 인류 구원사업에 봉사하신 것처럼
우리 역시 성령님과 성모님과 일치하여 봉사할 것을 초대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레지오 단원으로서 충실하게 봉사하는 비결은 당신께 완전히
하나 되어 계시는 성모 마리아와 온전히 일치하는 것’임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즉, 단원간의 인간적 관계도 물론 중요하고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통한 보람과 기쁨도
중요하지만, 이것들이 내 자신이 레지오 단원으로서 충실하게 봉사하는 비결이 될 수는
없다. 엄마! 엄마! 하며 엄마의 품에서 옹아리하는 아기처럼 우리는 자신을 성모님께
완전히 의탁하고 일치해야한다. 이러한 일치는 미성숙이 아니라 거룩한 소명이다.
이 모든 사실 즉 성모님과 일치를 통한 영성을 나타내는 벡실리움을 손에 쥐고,
드디어 선서자는 처음으로 선서문에서 자신을 성모님의 자녀로 감히 칭한다.
“저는 지금 성모님의 병사요, 자녀로서 당신 앞에서 서서 성모님께 온전히 의탁함을
선언하나이다. 성모님은 제 영혼의 어머니시옵니다.”
마치 미사 중 성찬의 전례 때의 그 거룩한 성변화처럼 새로운 성모님의 자녀로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이 바로 이순간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한다는 것이며, 함께한다는 것은 닮아간다는 것이며
닮아간다는 것은 같아진다는 것이며, 같아진 경지에서 서로 순명한다는 것은,
고통 안에서도 진정한 사랑을 이룬다는 증거이다.
늦둥이 아기와 엄마는 나이가 똑같아 보인다. ‘아이의 나이가 엄마의 나이’라는 말도 있다.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위해 낮아지고 일치하는 것은 바로 사랑의 힘이기에 기쁨이 되고
정성이 되는 순명이지 수동적인 순명이나 고통만의 순명은 아니다. 결국 성모님과의
일치는 성모님을 닮은 영혼으로 나의 영혼을 변성(變性)시킴을 선서문은 말하고 있다.
선서문은 이 선서의 계약의 목적과 시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세상과 영혼들에게 그리스도를 모셔다 드리게 해주시고 그
들과 제가 이 세상 싸움에서 이긴 다음 성모님과 함께 성삼위의 영광 안에서 영원히 살게 해주소서.”
여기서 영혼들이란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연옥의 영혼들 그리고 현세의 구원 받아야 할
모든 이들을 말하므로 이 지상의 구원뿐 아니라 연옥의 영혼들도 그 대상으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단원들이 연옥영혼들을 위한 연도와 묵주기도
바치기에 선두적인 역할을 해왔음은 참으로 주목할 만하다.
선서문의 후반부에는 레지오의 규율에 대한 충성과 복종을 선언한다. 이 규율은 바로 은총의 기적을 일으키는 도구가 된다.
결국 위에서 언급과 일치의 영성 안에서 이 규율이 지켜질 때 이 세상의 모습은 바로 하느님의 나라로 태어나는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 선서문의 특징은 다른 선서문의 형식과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규율의 구체성과 충성만을 강조한 다른 사회의 선서문과 달리
서약의 정신과 목적 그리고 나아가 영성적인 면이 전반에 제시되고 풍요롭게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선서문은 바로 그 단원들의 유언이며 동시에 모국어(母國語)이다. 모국어(母國語)란 어머니의 언어,
즉 나를 낳아 생명을 주신 분이 가르쳐주신 언어, 그 언어로써 어머니와 통하고 모든 지혜와 경험을 얻는 영혼의 언어이다.
사제는 사제 서품 서약을 하면서 그 서약을 성 목요일에 갱신하며 또한 매 미사 때 그 서약을 기억한다.
어느 금슬이 좋은 부부는 혼인서약문을 액자로 벽에 평생을 걸며 매일 함께 낭독했다고 한다.
우리가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하면서 힘들 때 성모님 앞에서 선서문을 다시 한 번 낭독하면 커다란 힘이 생긴다.
얼마 전 30년 동안 레지오 단원으로 봉사하시고 레지오 장으로 성모님 품안에 잠든 한 단원의 미사에 참석하면서
수많은 단원들과 그 분으로부터 봉사를 받은 활동 대상자들 그리고 레지오 마리애의 수많은 단기를 바라보며
그분이 평생하신 성모님과의 서약이 선서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느꼈다.
“성모님과 함께 진군하는 우리의 대열을 가다듬어, 당신의 뜻을 이루고 은총의 기적을 일으키게 하나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땅의 얼굴은 새롭게 되고 온 누리에 하느님의 나라가 펼쳐지게 될 것이옵니다.”
그의 관이 퇴장하면서 단가가 울려 퍼졌다. “어머니시여 모후시여, 나는 오로지 당신 것,
내 모든 것이 또한 당신 것, 어머니시여 모후여!” 우리가 노래하는 이 단가의 가사가
바로 우리의 선서이자 삶이며 영원한 생명으로 떠나는 상여가喪輿歌 아닌가?
'믿음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위령기도(연도) 및 조문 예절 (0) | 2012.05.22 |
---|---|
[스크랩] 레지오의 활동 (0) | 2012.05.22 |
[스크랩] 소성무일도 (0) | 2012.04.25 |
[스크랩] 묵주기도에 대하여~ (0) | 2012.04.10 |
[스크랩] 구원송의 유래 (0) | 2012.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