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집회 3,2-6.12-14
2 주님께서 자녀들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권리를 보장하셨다. 3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4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
5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진다. 6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
12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13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14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복음 루카 2,22-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딸을 둔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느지막하게 얻게 된 딸이었기에 더욱 더 큰 사랑을 쏟으며 키웠지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 딸아이가 머리가 아프다는 것입니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아픈 것이겠지 하면서 무심하게 넘겼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병세가 심해지는 것입니다. 결국 병원에 가보니 뇌종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미 늦어서 몇 달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부는 크게 절망했지요. 아내는 하느님께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도 포기한 자신의 딸 아이, 그러나 하느님께서 분명히 고쳐주실 것이라면서 모든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남편 역시 열심히 하느님께 기도했지요. 하지만 딸아이의 고통은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이 고통을 지켜보면서 남편은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잘 아는 친구 의사를 찾아가 아이가 사는 동안만큼이라도 고통 없이 살 수 있도록 강한 진통제를 부탁합니다. 친구 의사는 강한 진통제를 맞으면 진통은 줄겠지만 생명은 더 짧아질 수밖에 없음을 말했지요.
결국 남편의 간곡한 부탁으로 아이에게 강한 진통제를 투여했습니다. 진통제를 맞은 아이는 언제 아팠냐는 듯이 한동안 멀쩡해졌습니다. 이 모습에 아내는 하느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면서 기뻐했지요. 그러나 이 아이는 얼마 못가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딸아이의 죽음에 아내는 사랑스러운 딸을 왜 하느님께서 데려가셨냐며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가지 않았지요. 반면 남편은 약간의 방황이 있기는 했지만, 곧바로 다시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교회에 나갔답니다.
이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참된 신앙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참된 신앙은 남편이 보여준 모습처럼, 기적이 사라진 곳에서도 희망을 갖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러한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고통이 있느냐 없느냐의 기준으로 행복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보다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행복의 판단 기준이 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믿음만 있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간직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요셉 성인이 이룬 가정을 성가정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성가정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요? 아무런 고통과 시련이 없는 것? 세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각종 재물과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 그렇다면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요셉 성인이 이룬 가정은 절대로 성가정이 아닙니다. 이 가정은 예수님 탄생의 순간부터 고통과 시련이 계속되었으며, 세속적으로도 그렇게 부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성가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기적이 사라진 것 같은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굳은 믿음으로 서로 사랑하는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성가정은 믿음의 가정임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가정이 이 믿음의 가정이 될 수 있도록 가족의 구성원 서로 서로가 더욱 더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믿음이란 아직 어두운 새벽에 노래하는 새와 같은 것이다.(타고르)
가족은 사고로 만들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성가정상이라고 합니다.
친구 동생의 혼배 미사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강론을 하시는 신부님께서 아주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오늘 두 사람은 인생에서 가장 큰 사고를 치려합니다. 사실 가족은 사고로 만들어집니다. 부부가 만난 것도 알고 보면 사고이고, 아이가 생긴 것도 알고 보면 사고이고... 그래도 가장 행복한 사고가 될 것입니다.”
가정을 이룬 뒤에도 사고는 끊임없이 반복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고들을 불행하다고만 생각한다면 정말로 불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고로 부부를 이루고, 사고로 아이 생긴 것을 기억하면서, 가정을 이룬 뒤에 생기는 사고 역시 행복하기 위한 사고로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아마 어떠한 고통과 시련으로 보이는 사고 역시 행복의 과정이라면서 기쁘게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절망하지 마십시오. 희망을 간직하십시오. 특히 서로에 대한 믿음과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일구어 나가는 것, 이것 진정한 성가정의 모습입니다.
|
|